추모객들 “간호사 태움 개인 문제 아닌 병원 시스템”

[지뉴스데일리=박귀성 기자] 서울아산병원 새내기 간호사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후 보름만에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추모집회가 열렸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다 설 연휴 선배를 만나고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아무개 간호사를 추모하는 집회다. 박 간호사 추모집회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네거리에서 열렸다. 정치권과 노동계 의료계 등 300여명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이날 집회는 지나가는 200여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한때 600명 가까운 대규모 집회가 됐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다 설 연휴 선배를 만나고 돌아온 지난달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아무개 간호사를 추모하는 이날 집회는 “나는 너였다. 나도 아팠다. 너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구나…너는 나였다. 너는 우리다. 스스로를 잃어가 아픈 우리다. 나는 너였다. 나는 너이다. 나를 잃지 않겠다. 나를 지켜봐줘. 더는 울지 않겠다. 나는 너이다”라는 추모의 노래가 동료 간호사들 눈물의 합창으로 구슬프게 울려퍼졌다.

한손에 촛불을, 한손엔 국화꽃을 들고 추모객들과 시민들이 집회장소로 모여들었고, ‘나는 너였다’ 노래가 울리자 추모객들과 시민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날 집회는 주최한 간호사연대는 지난달 15일 설 연휴 첫날 서울시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채 발견된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고 박아무개(27) 간호사를 추모하기 위해 ‘나는 너였다’는 제목의 이 노래를 만들었다. 박 간호사의 죽음의 배경엔 소위 ‘태움’이라고 불리는 간호사의 교육을 명목으로 괴롭히는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태움’은 ‘재가 될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병원 내 간호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직장내 괴롭힘 문화를 말한다.

이날 추모식에 동참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여성 최초 산별연맹 위원장이자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이수진 위원장은 이날 연대발언을 통해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라고 나이팅게일 선서문을 인용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간호학생, 간호사들은 이 선서문을 낭독한다. 고 박성옥 간호사도 이 선서문을 낭독하고 간호 현장에 왔다. 이 선서문을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이슬처럼 사라져 간 고 박선옥 간호사의 명복을 빈다”고 고인에 대한 비극적 선택에 애도를 표했다.

이수진 위원장은 이어 “이 자리에 참석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아마 대한민국의 선배 간호사로서 간호현장을 좀 더 좋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1인 조합 활동가로서 후배들이 이런 결단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이 자리에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선배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같은 인력, 같은 조직문화 같은 대한민국의 간호사라는 지휘를 갖게 만든 건 아닌가. 그런 책임감 때문에 차마 이 자리에 선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수진 위원장은 다시 “그렇지만 26년 간 병원에서 노동조합에서 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 우리가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내가 아프고 우리 집안 동지들이 아프고 우리 대한민국이 힘들고 간호사들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가 겪고 있는 아픔 해결해주지 않을 거라는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다”고 같이 함께하는 뭉치는 힘을 강조했다.

이수진 위원장은 눈시울을 붉힌채로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26년 전 저도 신규로 출근하면서 느꼈던 아픔에 일어나는 게 두려울 때도 있었던 그런 기억들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 봤다. 누구도 해결해 주지 않았던 태움의 문화. 누구도 해결해 주지 않았던 그런 조직 문화 속에서 박선옥 간호사가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지 그건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동료들, 그리고 선배들, 그리고 앞으로 간호사가 될 학생들, 모든 사람들이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다들 생각할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고 박** 간호사가 겪었을 힘겨운 간호사의 삶을 되짚었다.

이수진 위원장은 나아가 “저는 이젠 세브란스 병원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태움 문화 금지와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선배든 후배든 가슴에 배지를 달고 태움 금지, 인격모독 금지라는 배지를 나눠주고 있다. 현장의 많은 간호사들이 그 배지를 달고 우리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그런 역할들, 그런 운동들, 그런 실천들을 하자! 그런 결심들을 하고 있다”면서 “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 자리에 오신 분들, 그리고 간호사의 문제들을 지켜보고 계신 시민사회 많은 국민들도 대한민국이 앞으로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간호현장에서 더 이상 간호사 개인의 책임으로 개인이 아파서 쓰러지고 사라져가는 그런 일들을 두고 보지 않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수진 위원장이 과거 몸담았던 세브란스 병원 노동조합의 성공적 사례를 언급했다.

이수진 위원장은 다시 “저희가 보건복지부도 노동부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아까 인사하신 현정희 동지께서도 그런 위치에 계시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책임 있는 자리에서 결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떻게 법을 바꿀 것이고, 어떻게 제도를 바꿀 것인지 그것을 우선순위에서 미루지 말고 병원의 수익이나 다른 인기 영합에 그런 정책이나 제도를 먼저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그런 간호사들의 어려운 현장을 해결할 수 있도록 같이 나서야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이 자리 작은 분들이, 작은 연대 단위가 만들었다. 이 작은 연대단위가 앞으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우리 간호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들불처럼 퍼져나갈 수 있는 그런 촛불의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이날 모인 간호사연대가 향후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했다.

이수진 위원장은 그러면서 “저도 열심히 실패하고 아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결할 수 있는 역할들이 무엇인지 더 더듬어 보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자리에 계신 분도 다 함께 같이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의 목소리,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도록 다 같이 지치지 말고 냈으면 좋겠다”고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최원영 간호사가 유족의 입장문을 대독했다. 박 간호사의 큰 이모가 쓴 입장문은 박 간호사에 대한 그리움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유족은 입장문에서 “애교도 많고 자신감 넘치던 우리 아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은 병원 입사 후 한달이 지난 시점부터였다. 힘없는 목소리로 ‘이모, 내가 전화를 잘 못 한대’ ‘우리 선생님은 잘 안 가르쳐 주는 것 같아’ 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아주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정도로 성실한 아이였다. 우리 아이가 그렇게 부족했습니까? 그럼 애초에 불합격시킬 것이지 왜 데려가셨냐. 우리 아이와 같은 불행한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병원의 내부감사결과 보고서를 유가족에게 공개하고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서울아산병원쪽에 요구하면서 “비극의 원인에 대해선 병원에서 침묵하고 있고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고 있다. 아이를 떠나보낸것도 모자라 우리 아이가 이상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해명해야 하나. 아이는 예민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다”라고 절규했다. 이런 유족의 편지글을 낭독하는 동안 이날 모인 간호사들은 저마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한편, 이날 간호사연대가 준비한 ‘나는 너였다’ 고 박 간호사 추모 촛불집회엔 JTBC와 MBC, KBS, SBS 등 방송사들과 수십명의 인터넷 언론사들이 일제히 관심을 보이며 취재 경쟁을 벌였다.

 

저작권자 © 지뉴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